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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부터 1박2일 동안 강원도 양구 소재 21사단 백두산 부대를 찾아 1일 소대장 생활을 하였다. 국방홍보원 산하 국방TV의 ‘우리는 전우’라는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하여 방문한 백두산 부대이기는 하지만, 젊은 병사들과 지낸 중동부전선에서의 하루는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백두산 부대는 한국전쟁 말기인 1953년 1월 창설된 부대로서 백두산까지 진격하여 태극기 꽂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부대 명칭을 지었다고 한다. GOP사단으로 작계지역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대이며, 전방 사단 중 가장 길고 넓은 섹터의 철책선을 담당하고 있으며,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파던 제4 땅굴이 발견된 곳으로 겨울에는 영하 20도 전후의 강추위가 몰아치는 최전방부대이다. 필자는 1968년 3월 학도군사훈련단(ROTC) 6기생으로 소위로 임관되어 1970년 6월말까지 백두산부대 GOP에서 소대장 근무를 하였다. 가칠봉, 도솔산, 펀치볼 등과 같은 가장 험난한 산악지대를 방어하고 있는 소초의 소대장을 지낸 필자는 이번에 46년만에 근무하던 소대를 방문한 것이다. 필자가 소위로 임관된 시기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김신조 일당의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하였던 사건 직후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남북한 긴장관계가 극심하던 해이다. 그해 여름에는 울진·삼척무장공비침투사건까지 발생, 필자의 최전방 소대장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한 철책선 작업, 야간 잠복 근무, 동절기 시 1미터가 넘는 폭설 제설작업 등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병사들과 보낸 청년장교 시절의 추억이 새삼 되새겨 진다. 동절기에는 폭설로 식수를 길어오지 못해 야간 불침번이 페치카 난로 위에 큰 양철 물통을 올려놓고 밤새도록 눈을 퍼부어 녹여 만든 물을 밥물과 식수로 쓴 다음 세수를 하던 전방생활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하던 열악한 군 생활이었다. 당시 강원도 양구 백두산 부대까지 가려면 춘천을 지나 화천 오음리를 거쳐서 가는 꾸불꾸불한 비포장 산악길을 곡예하면서 5시간 정도를 가고 또 전방 부대까지 험악한 산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야 했던 머나먼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구까지 포장도로에다 직선으로 터널을 뚫어 불과 2시간도 안되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단축되었다. 소초시설도 아주 현대화되었다. 신세대 병사들을 위한 체력단련실에는 탁구대, 러닝머신 등이 있는가하면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컴퓨터, 노래방 기기도 설치되어 있고 도서실에는 교양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일반전화로 일과 후에는 부모님, 친구들에게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하고 분대별로 개별 침대가 있으며, 사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목욕도 풀 수 있다. 식사는 대학 구내식당의 식단과 차이가 없으며, 필요하면 라면과 같은 간식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야간 잠복과 순찰 근무를 하는 병사들에게 살을 베는 강추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툼한 방한복도 강추위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남쪽 철책선에는 일몰시부터 밝은 전등이 켜지지만 북쪽에는 전기가 부족하여 그야말로 밤에는 깜깜한 암흑이다. 이런 혹독한 환경을 견디어내는 장병 때문에 중동부전선은 오늘도 이상이 없는 것이다. 이번 전방 방문에서 필자는 생일케이크를 사가지고 가서 첫날 저녁에는 12월 생일을 맞는 병사들과 생일파티를 하였다. 46년 전 소대장 시절 매달 생일파티를 할 때 즐거워하던 병사들의 모습이 떠올라 생일파티를 한 것이다. 이튿 날에는 마침 필자의 70회 생일이라 장병들의 축복 속에 생일잔치를 하였으니, 이보다 더욱 기분 좋은 생일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자랑스럽고 늠름한 대한의 건아! 21사단 백두산 부대 장병 파이팅!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 [2014.12.23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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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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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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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오를 것만 같던 석유가격이 심상찮은 하락세에 있다. 올해에만 약 40% 이상 하락해 배럴 당 50달러대를 기록하고 있다. 30달러대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40여년을 고유가 걱정 속에 살아온 우리나라가 저유가 폐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 10% 하락으로 0.3%대의 성장촉진효과와 물가하락, 가계실질소득 증대가 예상된다. 총체적으로 연간 2,000억달러의 석유를 수입하는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은 틀림없다. 디플레 위험이 없다면 국내총생산(GDP)을 2~3%포인트 정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점점 약해진다. 수출제약, 엔화 약세, 디플레 우려 등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저유가는 가계복지에는 도움이 되나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부정적이다. 필자가 속한 국제에너지 전문가그룹에서는 오래 전부터 유가 70~80달러를 적정 균형가격으로 보아왔다. 기술진보와 시장여건을 동시에 고려하고, 확인매장량, 석유시장의 구조적 실패요인, 각국 정부 등 이해당사자들의 비정상적 행동양태의 한계를 감안한 실질가격이다. 따라서 이보다 높으면 시장실패에 따른 거품으로 본다. 이런 논리는 현실에서 검증된다. 미국 셰일가스의 경제성은 대략 이 수준에서 확보된다.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 대부분과 사회비용을 고려한 원자력발전의 경제성 확보도 마찬가지다. 결국 유가 80달러 수준은 ‘넘지 말아야 하는’ 금단의 영역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석유시장 구조변화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다. 단기 시장상황을 계량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미래상황으로 연장하고, 이를 ‘진리’로 믿는 학계의 관행 때문이다. 시장분석에서 기술적인 검토를 배제했고, 심지어 석유 등 화석연료의 가채(可採) 매장량이 저가격 시대에도 기술혁신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조차 외면했다. 국제적 상식으로 통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화석에너지시대 100년 연장 가능성 역시 우리 에너지 전략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영혼 없는’ 분석의 한계이자 에너지 지식시장의 쇄국(鎖國)현상이다. 이를 종합할 때 유가는 장기 지속가능한 정상수준(80달러 수준)에 정착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기 급변상황의 가능성은 있지만 수요가 공급을 견인하는 여건에서는 크게 바뀔 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급변의 공포를 딛고 에너지비용 최소화를 위한 ‘화석연료시대 100년’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먼저 국내 석유ㆍ가스산업의 개혁이다. 이들은 자원고갈 공포에 따른 과잉투자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단일품목 수출 1위를 기록했던 정유산업은 전형적 불황산업이 됐다. 석유화학 분야는 중국수출 한계로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가스산업도 해외투자 실패로 고초를 겪고 있다. 이런 실패는 에너지산업의 경쟁력은 시장경제의 ‘망각’ 수준에 반비례 한다는 논리를 무시한 방만 경영의 결과다. 남북분단 상황에다 일본, 중국 등 인접국과의 에너지 네트워크가 없는 우리의 에너지자립은 결국 제품자립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준공공독점, 영역독점에 길들여져 환경변화 감지능력을 상실한 산업에 대한 과감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에너지세제 개편을 통해 소비를 진작하고, 국가에너지 전략도 바꿔야 한다. 그래야 민생복지 위주의 저유가시대를 열 수 있다. 둘째 대체에너지 개발전략을 보급위주에서 장기 기술개발로 바꿔야 한다. 원자력 개혁도 마찬가지다. 셋째 해외자원개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단기 물량확보 전략에서 탈피해 국내 도입이 가능한 프로젝트만을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축, 유통, 거래 등 물류인프라 확충과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민간기업의 자발적 해외투자 지원을 위한 관련 서비스산업이 확보돼야 한다. 넷째 에너지전략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 50년 가까이 석유 대체는 에너지전략의 핵심이었고, 인적ㆍ물적 자원과 산업인프라도 여기에 집중돼 왔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 국정과제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선진국으로의 완전 진입에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저유가 사태가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기련 아주대 명예교수 [2014.12.18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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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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